흥행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업영화는 감독도 중요하지만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의 중요성 때문에 배우 놀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 영화에서 그중 단 한 명의 배우만 꼽으라면 아마 가장 많이 거론될 배우는 송강호가 아닐까? 긴 세월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이제는 글로벌 배우가 된 그는 독특한 개성으로 영화를 이끌며 특유의 장악력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그의 최근 흥행 성적은 명성에 비해 초라하다. 가장 최근 영화였던 거미집의 흥행 참패 후 선보이는 영화 1승은 그래서인지 더욱 주목을 받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1승의 감독은 거미집의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이다. 시간의 순서상으로는 1승을 먼저 촬영했으니 송강호와 신연식 감독의 첫 작품은 1승이라고 봐야 한다.
영화 1승은 배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다. 좀 더 정확하게는 여자배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라 할 수 있다.
승리와는 거리가 먼 배구 선수 출신 감독과 역시 승리는 남의 얘기 같은 여자 프로배구팀이 럭비공 같은 구단주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앞서 나온 다른 스포츠 영화들의 성적표만 봐도 이제는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쉽지 않은 소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이미 관객들은 기존 스포츠 영화를 통해 일종의 신파가 가미된 공식 같은 전개 방식의 구조를 경험함으로써 스포츠 영화의 한계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신연식 감독은 기존 스포츠 영화의 신파 코드를 오히려 영화의 소재로 사용해 시나리오에 녹여 넣었다.
영화 동주에서 신연식 감독과 함께 했던 박정민이 그 신파 코드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구단주 역할을 맡았다.
마치 일론 머스크를 보는 것 같은 파격적인 재벌 구단주 강정원은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단 1승을 목표로 파격적인 공약을 한다.
오합지졸의 선수들과 감독은 농담과도 같은 구단주의 그 공약에 올라탄 채 절실한 단 한 번의 승리를 향해 휘청거리며 내달린다.
1승을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느낌의 스포츠 영화라고 말할 순 없지만 분명 차별화는 보인다. 그 비결은 아마도 적절한 균형이 아닐까?
인물의 고난과 역경이 등장하지만 극의 흐름을 모두 장악할 정도까지는 침범하지 않아 기존 스포츠 신파를 살짝 피해간다.
스포츠 영화의 백미인 경기 장면도 현장감을 위해 실제 촬영에 공을 많이 들여서 적절한 균형을 맞췄다.
세계적인 수준의 특수효과 기술을 보유한 우리의 영화산업이지만 신연식 감독은 실제 촬영에 많은 공을 들여 마치 배구 중계를 보는 것처럼 생생한 장면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 최초의 배구 영화 타이틀에 걸맞게 배우 구성도 다채롭다. 배구를 처음 해보는 배우들, 연기를 처음 해보는 배구 선수들, 깜짝 놀랄만한 카메오 등 1승의 출연진들은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잘 잡힌 균형은 송강호와 영화 사이의 힘의 균형이다. 명실상부 한국 영화 최고의 캐릭터 배우 중 한 명인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에서는 그의 채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것은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한다. 대체불가의 존재감으로 송강호 표 영화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내지만 때로는 그의 채취가 너무 강해 영화가 끌려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 1승은 황금비율의 밸런스가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대체불가 송강호의 모습보다는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배구 감독 김우진을 만나게 되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의 존재감을 다시 곱씹게 된다. 작품과 그의 캐릭터 사이 적정 거리가 잘 유지된 탓이라 본다.
거미집, 삼식이 삼촌, 1승까지 최근 무려 3작품을 함께한 감독과 배우. 과연 신연식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영화 1승을 통해 새로운 1승을 거둘 수 있을까? 그리고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배구 선수를 연기한 많은 조연배우들의 1승 또한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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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훈 영화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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