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人사이트 #11] '스타인여사' 20세기 최고의 문화예술의 여왕

문화 / 송진희 기자 / 2019-07-04 14: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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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최고 문화예술의 여왕이라 불리는 거트루드 스타인

약 100년 전, 1900년 초반은 지난 시대의 몇백년을 압축할 만큼 급속한 과학발전으로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는 현대 사회의 급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1905년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인간 내면의 무의식 세계의  존재를 밝혀낸 정신분석학발표로 정신혁명이, 여성들을 장신구로부터 해방시킨 가브리엘 샤넬의 패션혁명, 빛과 시공간의 본질을 물리적으로 증명해 낸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으로 과학 혁명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졌던 도시와 사람들을 위해 고안한 대규모 주거형태를 고안해 낸 르 코르뷔지에로 인해 건축 혁명이 일어났다.  

▲ 현대 미술의 발전사 
1800년대 후반 사진의 발견은 미술의 역사를 두 번이나 뒤집어 놓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첫번째 미술혁명은 색감과 형체에 파격을 준 야수파의 등장이고, 두번째 미술혁명은 야수파 그림에 충격을 받은 화가들의 좀 더 파격적인 비구상세계를 열어 낸 입체파다. 

사진은 화가들의 역할을 빼앗고, 생계의 위협을 받은 화가들은 사진이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일에 매달린다. 그것이 인간의 내면과 진실을 읽어내고 이를 표현해 내는 일이었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탐구로 표현해 내는 것은 무조건 새로운 것이어야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기존의 미학적 가치를 파괴하고 대중에게 지적 충격을 주는 철학적 자세를 추구했고, 이는 20세기가 원하는 미술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대의 필요를 운명처럼 받아들인 고독한 혁명가들로 인해 위대한 문명의 줄기가 된 현대미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늘 그렇듯 진보는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너무 앞서면 '무모'하고 너무 느리면 '진부'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 최고의 국립 미술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규칙을 벗어난 색채와 형태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겠다고 한 화가들에게는 '그림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이들의 혁신적 관점은 예술가 특유의 영적인 감각으로 시대의 맥락을 꿰뚫어보는 최고의 무기였다.

세상은 서서히 그들의 진보된 그림에서 시대를 발견했고, 그들의 그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야수의 발톱으로 할퀸듯한 흉측한 그림'은 '야수파'로, '그림이 다 상자네'라는 조롱은  '입체파'를 탄생시켰다. 그럴듯한 고상한 미술적 이름 대신 싸늘한 비난과 조롱에서 유래한 언어가 그들을 대표하는 화파의 이름이 된 웃픈 사건이다. 

세상의 비난과 조롱보다 이들을 괴롭힌 것은 가난이었다. 35세에 아이 셋을 둔 마티스는 그림을 그만 두려던 적도 있었고, 피카소는 함께 누울 수 없는 비좁은 방에서 친구와 교대로 눈을 붙였다. 실험적인 화풍을 추구했던 화가들은 가난에 못이겨 다시 귀족의 초상화,부자들의 거실을 꾸며줄 풍경화를 그리는 '몽마르뜨의 화가'로 돌아갔다.

철저한 외톨이였던 이들의 곁을 조용히 지키며 가능성을 확신하고,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작품을 구입해 그들의 생활고를 덜어 주는 이들이 있었으니,그들이 현대 미술을 꽃 피우는 데 일조한 '화상'들이다. 
▲ 피카소가 그린 스타인의 초상화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 중 한 사람으로, 그녀의 그림 수집은 그림에 대한 투자라기 보다 친구로서의 우정이었다. 그린을 판 돈으로 마티스는 세 아이를 먹여 살렸고, 피카소는 비좁은 방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스타인의 집은 늘 예술가와 문학가로 넘쳐났다.  사람을 좋아하고 품어주는 넉넉한 성품으로 한사람, 두사람 초대해 파티를 연 것으로 시작했던 살롱이 미술과 음악의 만남 뿐 아니라 헤밍웨이의 단골이 되면서 문학과도 융합된 장소로 거듭나고, 스타인은 20세기 최고 사교계의 여왕이 되었다. 

파리 플뢰리가 27번지,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19세기를 지나 성급하게 찾아온 혁명으로 당혹스럽던 20세기초 매주 토요일 밤 예술가들의 발걸음을 이끌던 장소. 수많은 예술가에게 최고의 '문화살롱'으로 자리매김하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이었다. 
 

스타인은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예술운동에 강한 애정을 드러 낸 최초의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다. 이내 스타인의 집은 파리에서 유명한 살롱이 되었고, 그곳을 방문한 이들은 '그토록 많은 예술가를 한 장소에서 만나고, 그토록 많은 그림을 한 장소에서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스타인의 살롱에서 열렸던 역대 전시회의 포스터
그의 집에는 피카소, 마티스, 세잔, 마네, 후안 그리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는 화랑이었으며, 당시 최고 음악가 에릭 사티의 연주화장이었고, 헤밍웨이의 휴식처이자 파츠제럴드 부부와 기욤 아폴리네르 연인의 카페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미술과 음악과 문학이 한 장소에서 서로에게 융합되는 장소였다. 

높은 가치의 예술품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던 스타인의 탁월한 안목으로 20세기 초 새로운 시대의 예술가들의 영혼을 거느리고, 문화계 최고의 여왕으로 군림한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탄생되고 성장하며,세계의 걸작이 길이 남게 되었다.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전시가 지난 6월12일 개막식을 시작으로9월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코바나컨텐츠와 프랑스 트루아현대미술관, 연합뉴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주최하는 야수파, 입체파 걸작전은 성대한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테이프  커팅식에 참여한 인사들의 화려한 면면도 주목되었다.

부디 이렇게 좋은 전시회가 스타인 여사와 같이 문화와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되고 끝까지 초심이 변치 않고 좋은 결실을 맺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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