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혹은 내 가족의 일이 아닌 이상 장애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 아무런 접점 없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나선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위해 평생을 투신할 각오가 된 창업가가 여기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지오에스’의 김창걸(42) 대표다.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몸이 아프고 어려운 이들에게 유독 눈길이 많이 가곤 했다. 자연스레 봉사활동에 매진했지만, 그보다는 본질적이고 실질적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폭넓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재활공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 시절 그의 첫 작품은 지체-언어중복장애인을 위한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였다. 스위치 하나로 다른 사람에게 다양한 표현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장애인-비장애인 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첫 작품이라 그런지 계속해서 추가 개발에 매달릴 정도로 애착이 컸습니다. 운이 좋게도 결국은 전국단위 공모전에 나가 수상에 성공했죠.”
석사 진학 이후에는 시각장애인이 스틱(화이트케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전방 장애물을 감지하는 센서가 장착된 옷을 제작했다. 박사 시절에는 장애 아동이 문제행동을 일으키거나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 케어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박사학위 취득 이후 김 대표는 3년간 모교 연구교수를 거쳐 큰 규모의 메디컬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각종 프로젝트를 소화하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때까지 축적된 역량과 경험을 ‘내 것’으로 녹여내고 싶은 욕구는 점점 커져갔다.
결국 나이 마흔을 앞둔 2018년 1월, 길고 깊은 고민 끝에 회사를 등지고 나온 그는 본격적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간 구상해왔던 다양한 제품들을 설계해 생산 가능성을 타진했는데, 시장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재활 분야 쪽은 수요가 한정적이라 경제성의 한계가 뚜렷했어요. 뭘 좀 만들어보겠다고 어디 가서 내놨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경제성이 떨어지더라도 꼭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면 정부라도 나서서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건데, 화가 나더라고요.”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던 그가 주목한 것은 기능적전기자극치료(FES)가 가능한 보행 재활 의료기기였다. 당시 뇌졸중으로 고생하면서도 투약 외에 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던 장인어른의 상황을 보면서 느낀 안타까움도 적잖이 작용했다.
발꿈치 쪽에만 센서가 부착돼 있던 시중의 기존 제품과 달리 발 앞쪽까지 센서를 확장하고, 꾸준함이 생명인 재활을 위해 일상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발에 몰두했다. 3년 가까이 꼬박 매달린 끝에 제품 ‘세라(SERA)’를 완성할 수 있었고, 2020년 11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인증 획득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초보 창업자였던 김 대표에게 당시 식약처 인증 획득은 실수였다. 제품이 의료기기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추가적인 보완이나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제품에 수정을 가할 경우 처음부터 인증 절차를 모두 밟아야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의료기기가 아니라 보조기기로 갔으면 여러 모로 편했을 텐데 그걸 몰랐죠. 그때만 해도 저는 창업자보단 공학자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제품 판매는 폭발적이진 않아도 나름 순조롭게 이뤄졌다. 입소문이 나면서 방송을 탔고, 블로그 체험단을 운영하면서 B2C 영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그제야 자신이 사람한테 해가 되고 쓸모가 없는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김 대표는 이듬해 출시를 목표로 종아리 근육 보조기기를 개발 중이다. 첫 제품 출시로 얻은 갖가지 피드백과 개선점을 충실히 반영해 이번에는 후회가 없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의 목표는 장애와 노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들이 단 하루라도 고통 없이 지내는 것이다. 자신이 대학 시절부터 쌓은 역량을 동원해 앞으로도 이 같은 철학 아래 좋은 제품을 쉼 없이 만들어내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 또 어떤 제품을 개발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평생 고민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스스로 맞다라고 생각되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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