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홍콩 시민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인구 700만명의 도시에서 200만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는 시위는 가히 획기적이다. 시민의 거대한 동원을 촉발한 기폭제는 범죄인 인도에 관한 법이다.
'범죄인 인도 조약'이란 다른 나라의 법을 위반한 범죄인이 자국으로 도망해온 경우, 외국 정부의 요청으로 범죄인을 체포해 해당 국가로 인도할 것을 약속하는 조약을 의미한다. 이는 형사사건의 효율적이고 신속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약이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 법안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홍콩으로 숨어든 범죄인을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과 마카오 등의 요구에 따라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국가가 상호 간에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 개정안이 반중(反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을 다른 구실로 체포해 중국으로 송환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송환법 논란'의 기저에는 '홍콩의 친중국화' 즉, 홍콩의 법제와 시스템을 비롯하여 홍 시민들의 의식구조까지 중국화 하려는 데에 대해 홍콩 시민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한 이후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른 갈등이 2014년 '우산혁명' 시위로 표면화됐고, 이번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기를 든 시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8년, 홍콩 출신 두 남녀가 함께 대만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자는 여자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돌아온다. 나중에 범인이 밝혀졌고, 대만은 홍콩에 살인범을 대만으로 보낼 것을 요구하지만, 홍콩은 범죄인 인도법에 의해 범인을 대만으로 보낼 수 없었다. 또한 홍콩의 속인주의로 인해 범인은 해외에서 저지른 살인죄 대신, 살해한 여성의 현금카드로 홍콩에서 돈을 인출하여 사용한 것에 대해서만 죄를 적용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것이다.
2019년 6월 9일 일요일,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반대하기 위해 홍콩 시민 약 103만 명이 모였다. 경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 고무 총, 물 대포 등의 무기를 사용했고, 14일 기준으로 81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시위자 중 11명이 체포된 상태이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SNS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송환법 저지를 위해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물론 홍콩 정부도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홍콩 정부를 이끌고 있는 캐리 람 홍콩 행정 장관은 친중국 성향으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그녀는 홍콩 시위를 폭동이라 부르며 시위자들을 거세게 비난했다.
지난 6월 16일 홍콩 역대 최대 규모인 200만명(주최측 추산)이 몰린 시위의 참가자들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완전 철폐와 함께 캐리 람 행정장관 하야를 요구했다. 이미 보류 방침이 정해졌던 송환법은 별도 폐기 절차 없이 현 입법회 의원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에 '자연사'할 전망으로, 이번 시위가 이끌어낸 실질 성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서방 국가와 중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대만까지 적극적으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외의 많은 나라에서도 홍콩 시위에 대한 내용을 연일 크게 다루고 있으며, 세계인들은 홍콩인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한편, 이 시위는 G2(미국, 중국) 간의 갈등 양상도 보이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12일 "범죄인 인도 법안은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고 홍콩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중국의 뻔뻔한 시도"라고 지적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100만명이 시위를 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시위였다"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메이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총리실에서 진행된 후춘화 부총리와의 회담에서 홍콩 시위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같은 날 보도했다. 후춘화 부총리는 영국과의 경제 및 금융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 중이었다.
총리 대변인은 이날 "메이 총리가 최근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대해 언급했으며, 영·중 공동선언에 명시된 권리와 자유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영·중 공동선언은 1984년 양국 정부 간 체결된 선언이다.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공동선언에 따라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됐다.
홍콩은 반환 당시 적용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중국 중앙정부로부터 외교와 국방 문제를 제외한 자치권을 보장받아왔다. 하지만 송환법이 강행될 경우 일국양제의 원칙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메이 총리는 지난 12일에도 한차례 영중 공동선언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총리는 또 "홍콩에 수많은 영국 시민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안의 잠재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람 장관의 하야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6‧12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무력 해산시킨 책임을 물어 람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다. 람 장관은 16일 저녁 성명을 내고 “모든 비판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거취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레임덕에 처했어도 조기 사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법안의 완전 철회’를 언급하는 것도 패배로 여겨지는 마당에 람이 퇴진하면 중국 중앙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설사 람 장관이 물러난다 해도 현재 홍콩 선거방식이라면 언제든 이번과 비슷한 사태가 되풀이 될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이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일명 ‘체육관 선거’로 뽑히기 때문이다. 애초 중국은 홍콩 반환(1997년) 20주년을 맞아 2017년부터 직선제를 실시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2014년 발표한 홍콩 직선제안은 1인1표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보통선거와 사뭇 달랐다.
전인대 방안에 따르면 입후보자는 1200명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는 2∼3명으로 제한됐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입후보자가 ‘애국애항(중국과 홍콩을 사랑한다는 뜻)’ 인사여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사실상 반중(反中) 인사의 출마를 원천 봉쇄한 이 선거제는 홍콩인들의 격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때문에 홍콩인들은 학생‧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수개월간 격렬한 시위(일명 ‘우산혁명’)를 벌였고 문제의 직선제안은 2015년 6월 홍콩 입법회(의회 격)에서 부결됐다. 결국 2017년 제5대 행정장관 선거는 예전처럼 간접선거로 치러졌는데 여기서 당선된 이가 강경 친중파 캐리 람이다.
<참고>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큰 정치적인 운동으로, 2014년 9월에 홍콩의 대학생들을 시작으로 약 10만명이 참여했다. 2017년에 있을 행정장관 선거에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하였고, 이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목표하던 행정장관 직선제 개선안은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중국의 일국양제 아래 홍콩 민주화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를 거둔 미완의 혁명이라는 평가가 많다.
간선제의 한계는 명확하다. 선거 일주일 전 시민 6만5000명이 참여한 모의투표에서는 람과 경쟁했던 온건 친중파 존 창(曾俊華)이 91.9%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람의 지지율은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선 람이 777표(전체 선거인단 1194명)를 얻어 첫 여성 행정장관에 올랐다. 일찌감치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베이징 당국의 지원사격 덕분이다. 람은 정무사장(정무장관) 재임 당시 ‘우산혁명’ 시위를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를 통해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었다.
앞서 홍콩 정부는 선거안이 부결될 경우 당분간 직선제 방안 등 정치개혁안을 마련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번 시위에 못 이겨 캐리 람이 사임하고 조기 선거를 실시한다면 당시 미봉책으로 덮었던 선거제 논란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중국 정부로선 ‘입후보 자격에 제한이 없는 완전한 보통선거를 허용할 수 없다’가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마지노선이다. 홍콩에 이를 허용할 경우 중국의 소수민족자치구나 자치주도 “우리도 홍콩처럼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겠다”고 요구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과 홍콩 정부가 '송환법 사실상 폐기'와 '람 장관 사과'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중앙정부는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법에 따른 통치를 계속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해 일각에서 제기된 '람 교체 가능성'을 일축했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 왔다. 2003년 시민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반면 2014년에는 우산혁명을 통해 의회 선거의 민주화를 요청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은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2019년 투쟁의 특징은 홍콩 사회의 총괄적인 궐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시민 동원에 앞서 지난 6일 20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행진한 뒤 3분간 묵념하는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과 교사·교수는 물론 사회복지사나 버스 기사 등 직능 단체도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며 투쟁에 동참했다.
비공식적 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의 홍콩 사업가도 이 법안에 반대한다. 독립적 사법부는 홍콩이 세계 비즈니스와 금융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홍콩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또 시진핑이 반부패 캠페인을 빙자해 수많은 사업가를 길들인 사례를 가까이서 지켜본 홍콩이기 때문에 범죄인 인도는 중국이 홍콩 길들이기에 활용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수 읽기다.
홍콩 시민과 공산 중국의 반복되는 대립은 세계의 관심 대상이다. 중국이 2047년까지 홍콩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는 물론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세계의 의혹을 살 것이다. 특히 홍콩 시민에 대한 무시와 탄압은 대만 국민은 물론 아시아 모든 주변국의 지대한 관심 대상이다. 천안문사태 30주년을 맞아 들고 일어난 홍콩 시민의 항거는 중국이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부와 힘의 오만에서 벗어나 문명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리더십 또한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로 시험대에 올랐다.
시진핑에게는 홍콩 사태에 관심을 두고 보는 눈이 많아졌다는 부담이 있다. 또 미국을 필두로 영국, 독일 등이 홍콩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세계 각국에 중국이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다. 무역분쟁 상대국인 미국이 홍콩시민들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고, 내부에서는 홍콩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부 견제세력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미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반발 기류가 커진 상황에서 꼬인 홍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 주석 위상에도 타격이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번 홍콩 시위로 얻을 첫번째 타격은 공들여 키운 중국정부의 대리인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친중파들의 발언권이 이번 시위를 계기로 크게 약화했다. 특히 입안의 혀처럼 중국 정부의 의지를 살펴 홍콩을 통치해온 캐리 람 장관이 사퇴 위기에 몰린 것은 상처가 크다. 아울러 이번 시위를 계기로 홍콩의 중국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둘째로 미국이 무역협상 과정에서 꺼내 들 압박용 카드가 하나 더 늘었다는 점도 중국 정부 입장에서 아픈 대목이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지난 12일 “많은 홍콩 시민이 거리로 나온 것은 주목할만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G20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홍콩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홍콩 문제가 G20 회의에서 열릴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며 홍콩 문제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주권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국이 홍콩시위를 인권 탄압문제로 접근함으로서 내정간섭 주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미국 의회는 해마다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와 자치가 잘 지켜지고 있는 지를 재평가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며 압박에 나섰다. 미국은 현재 비자나 법 집행, 투자를 포함한 국내법을 적용할 때 홍콩을 중국과 달리 특별대우하도록 하고 있으나 재평가를 통해 이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홍콩을 글로벌 금융·교역 허브로 키우겠다는 중국의 구상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미 다수의 기업들이 법안이 통과될 것을 예상하고, 투자를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등 홍콩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홍콩의 사법 시스템이 점점 중국화 되면서 비즈니스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사무소를 싱가포르 등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골딘 파이낸셜 홀딩스는 최근 사회적 동요와 불안을 이유로 14억달러 규모의 부지 입찰을 포기했다.
홍콩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아시아 금융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중국과 별개인, 독립적 사법 시스템과 자본시장 친화적인 금융 시스템이 금융 허브 홍콩의 장점이다. 홍콩 내 중국의 장악력이 확대하고 사회 불안이 커지면 홍콩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홍콩의 신용등급을 기존 ‘AA+’로 유지하면서도 중국 본토보다 홍콩 신용등급이 높은 것은 ‘고도의 자치권’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자치권이 무너질 경우, 홍콩의 신용등급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더우기 이번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이 이뤄지면 상당수 미국 경영자들이 거점을 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 기업경제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