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人사이트 #13] 익살 정치인, '노회찬'

오피니언 / 송진희 기자 / 2019-07-22 13: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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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당정치와 복지사회를 꿈꾸던 진보투사

23일은 진보정당의 불모지에서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들고 올바른 정당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싸워 온 진보투사이자 촌철살인의 정치평론가였던 고 노회찬 의원의 1주기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이제 제4기에 도입했다 할 수 있다. 첫번째 일제와 해방기에 민족해방운동이 진행된 시기를 지나 두 번째 4.19 이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다양한 진보정당이 생겨나 원내에 진출한다. 그러나 5.16 쿠테타로 인해 짧은 시기로 막을 내리고 만다. 이후 87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힘을 얻고, 이제 새로운 진보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나는 4기에 접어들었다 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의 제3기와 제4기의 진보정당 씨앗을 뿌려온 이가 바로 고 노회찬의원이다. 그는 대다수의 민주화운동 세력이 보수 야당을 지지할 때 일관되게 독자 후보와 진보정당을 지지하며 외로운 길을 걸어온 투사였다. 일찍이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노동자계급의 독자정당을 주장했고 87년 대선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대선후보로 추대했다. 97년 대선에서는 민주화 이후 본격적인 진보정당 운동인 '국민승리 21'을 조직하고 정책기획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후 2001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 핵심 역할을 했으며,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마지막 번호로 당선되어 진보정치 시대를 열었다. 원내 진출 후 그는 탁월한 의정활동과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진보정당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현재 정의당이 보여주는 건전하고 올바른 리더십과 팔로우십을 통해 모범적인 정당정치 문화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보수의 벽에 부딪혀 2008년 총선에서 패배해 다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한국 진보진영의 다수가 민족문제를 중시하고 '친북적'이라는 평을 받는 '민족해방파'였던 반면, 노 의원은 북유럽식의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소수파였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비주류중의 비주류중의 비주류'였다. 이제는 바뀌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반공세력이었고, 민주화 세력이 비주류라고 간주한다면, 자유주의 세력이 비주류 내에서의 주류였고 진보세력은 '비주류의 비주류'였는데, 그 진보세력에서도 주류인 민족해방파가 아닌 진보속에서도 소수파인 비주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내 이념 갈등속에서 심상정 의원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촛불 항쟁 이후 뜨겁게 타올랐던 사회개혁의 기대가 거듭 배반 당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노회찬은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까.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것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다. 이때 경선에 뛰어든 노회찬은 인상적인 구호를 내걸었는데, 바로 ‘제7공화국 건설운동’이었다.

‘제7공화국’이라는 말은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든 한국 사회가 여전히 제6공화국을 살고 있음을 환기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뒤에 좀처럼 다음 단계를 향해 전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프게 드러냈다. 노회찬은 흔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외환위기 이후의 약탈적 경제 질서 역시 제6공화국 기득권 세력의 지배가 강화된 결과라 진단했다.

이런 현실을 넘어서려는 열망을 집약한 구호가 곧 ‘제7공화국’이었다. 제7공화국이 실현해야 할 양대 가치로 평등과 통일이 꼽혔고, 경제와 복지를 비롯해 생태환경, 소수자 인권, 노동과 농업, 평화와 통일, 국민주권에 이르는 비전이 망라됐다.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4대 기본권으로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를 꼽아 토지공개념의 선례에 따라 교육공개념, 의료공개념, 주택공개념, 일자리공개념이라 했다.

국가가 어떻게 책임진다는 말인가? 주택공개념을 위해서는 한 가구가 주택을 두채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하고 일정 규모가 넘는 대토지 또한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겠다고 했다. 일자리공개념은 비정규직을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고 국가가 공공부문을 통해 이런 일자리를 공급할 의무를 지게 함으로써 실현하겠다고 했다. 의료공개념을 위해서는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를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 같은 조세 지출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고, 교육공개념은 대학까지 무상 교육, 전면적인 대학 평준화, 대학입시 폐지와 입학자격시험 도입으로 실현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런 복지 체계를 뒷받침할 새로운 경제 질서도 제시했다. 제7공화국에서는 정부,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 대표들이 참여하는 ‘평등경제위원회’가 경제 전체의 기본 계획을 짜고 시장을 조절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특히 노회찬은 제헌 헌법에 명시됐던 이익균점권에 주목했다. 영리 목적의 사기업에서 노동자가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제헌 헌법 제18조를 오늘날에 맞게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단, 기업별 이익 격차가 커서 특정 기업 노동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으므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초기업 단위에서 관리 배분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원대한 구상은 오랫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2007년 대선 후보로 선택받지 못했고, 그래서 제7공화국 구상도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10여년간은 보수 정권의 퇴행에 맞서는 일이 급선무가 되어 버렸기에 노회찬도, 진보정당운동도 제7공화국 같은 자기만의 비전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다.

그는 현실 정치인으로서 진보정당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본인의 만든 당을 나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을 통합해 진보신당을 만들어 2012년 다시 원내로 진출했다. 그러나 진보신당을 떠났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야 했고, 통합진보당 역시 내분으로 해당되고 말았다.

노 의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의당을 재정비하고 진보정당 운동 재건에 나섰다. 정의당이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 플러스와 통합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거치지 않고 받은 후원금으로 인해 자신 뿐 아니라 정당까지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 노회찬은 비극의 길을 택한다. 그의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을 넘어 가장 깨끗한 정치인조차도 돈을 필요로하는 한국 정치의 딜레마와 그보다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금액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착복하고도 수치심을 보이지 않는 여러 정치인과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작고하기 얼마 전에야 노회찬 의원은 정의당 개헌안을 만들며 제7공화국 구상에 담았던 이상과 과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가 없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방향만은 선명하다.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마지막 말에서 그 “앞”은 어디를 향하는가? 그것은 평등과 평화의 나라, 제7공화국 건설운동이다.

우리는 우리가 고통 받지 않는 선까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 동정과 연민은 가벼운 것이다. 외면과 냉소는 손쉬운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더 깊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저 위선으로 취급된다. 어떤 정치인도 인간 한계에 대한 이러한 통념을 바꿔내지 못했다. 서민과 약자와 소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진보주의적 이념도 위선적인데, 하물며 그것을 정치로 이뤄내겠다는 말에 냉소와 조롱이 돌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남을 위하는 척 하지만 다 자신의 이익이나 챙기고자 하는 것’이라는 냉소와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조롱이 뒤섞인 그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 노회찬이 있었다. 그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현실적인 진보의 가치를 놓지 않으며 그것을 점진적으로 이뤄내기 위해 정치를 선택한 현실주의자였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지금의 20대에게 노회찬은 하나의 권능이었다. 그가 암흑의 시대를 뚫고 만들어낸 발판 위에서, 젊음은 스스럼 없이 진보를 이야기하며 까불어 댈 수 있었다. 젊음이 노회찬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남긴 촌철살인의 말들 덕분일 것이다.

노회찬 어록을 인터넷에서 키득거리며 소비했던 청소년에게 ‘진보신당 청소년 모임’에 대한 지지의 말을 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을 때 그가 남긴 익살이다. “진청모 여러분, 진보신당을 청소해 주십시오. 청소년이 우뚝 서야 진짜 신당이 됩니다.”

이런 그의 익살스러움은 지인들이 평가하는 노회찬의 성격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낯을 많이 가렸다. 익살스러운 발언들이 타고난 그의 성격에 따른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빛나는 노회찬의 재치는 차라리 진보 정치를 냉소하는 흐름에 맞서 싸웠던 그의 고통스런 노력의 결과물에 더욱 가까웠다.

“생존 때문에 그렇게 했어요. 노동운동 할 때, 노동자들이 신참인 내 말을 듣기나 하나요. 정당을 만들고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책을 길거리에서 설명할 때 30초도 길어요. 그 이상은 안 들어. 그런 상황을 나는 오래 겪은 사람이에요. <100분 토론>에 나가도 소수 정당이니까, 독한 얘기를 하니까, 다른 사람은 안 끊지만 나는 중간에 끊죠. 그러니까 더 줄여야 했고요.”

“우리(진보정당) 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요. 생긴 대로 살자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만 ‘생긴 대로 살지 맙시다!’라는 말은 논리가 복잡해요. 이걸 가지고 반대 측에서는 ‘빨갱이들은 말이 많다’는 식으로 나오죠. 그걸 못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말이 재밌으면 그 얘기를 안 해. 우리의 조건이, 주어진 환경이 강제하는 거지요.” (시사IN, ‘노회찬은 이런 정치인이었습니다’)

내가 번 돈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 말은 간단명료하지만, ‘세금을 더 거두어 약자를 위한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말의 논리는 더욱 복잡하다. 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배려하라는 말은 그다지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그 때 노회찬은 말한다. “돈 많이 벌어서 비싼 음식 먹는 거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근데 옆에서 누가 굶고 있다는 거죠. 그 때 옆에서 암소갈비 뜯어도 됩니까. 암소갈비 뜯는 사람들, 불고기 먹으라는 거예요. 그럼 그 옆에 사람들, 라면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세상입니까.”

노회찬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 핵심을 관통한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고 하는 인간다움의 통념을 그는 뒤바꿔버린다. 메시지를 갈고 닦은 그의 피나는 노력은 그동안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재인식하는 세계관을 만들었고, 진보주의자를 자처했던 이들은 그의 권능에 빚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언젠가 노회찬처럼 되는 것이 수많은 누군가들의 꿈이었다. 진보정당의 역사가 패배와 분열을 거듭할 때, 그의 정치적 행보도 어쩔 수 없이 갈지자를 그리며 휘청거릴 때, 타협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끈질김을 떠올리기보단 결국은 타협하고 후퇴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냉소를 돌이켜 보게 한다.

빚진 채 대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는 어른이 되는 동안, 수많은 20대의 삶은 그가 살아온 시기에 버금가는 암흑 속에 갇혀 있었다. 냉소는 청년들의 시대정신이 되었고, 심지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기만이라는 그들의 말 앞에서 왜 여태껏 진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지 못했냐는 원망이 한데 섞여 노회찬과 또 그의 행보가 원망받았다. 그의 행보가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 만큼 또한 누군가를 생채기 입히기도 했다는 비판적 평가는 아직 온전히 거두어지지 않았다.

노회찬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정치판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그가 꿈꿨던 세상을 만들어내겠다는 미련함을 향해 함께 돌진하고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뿌리내려 놓은 진보정치는 더욱 강하게 꽃 피울 것이다. 그를 위한 최고의 추모는 그가 꿈꾸었던 강하고 단단한 진보정당을 통해 제대로 된 정당정치와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뛰어난 진보정치인이기 이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촌철살인의 정치평론가였고, 첼로를 켜며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 문학가였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나아가길 바란다"는 말에서 자신은 버릴지언정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울림을 읽는다. 그리하여 그가 호명한 이 땅의 모든 투명인간들이 자신의 빛을 찾아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게 되는 그 날, 노회찬은 먼저 별이 된 진정한 동지로 기억될 것이다.

 

구약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나는 이 구절을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은 하늘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대중을 바로 이끄는 지도자들은 별처럼 길이길이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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